연예인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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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4-04-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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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MLB 드래프트
드래프트는 미국식 프로스포츠의 상징이자, 모든 팀이 명목상 '평등'한 전력을 수급하도록 만들어진 제도이다.
드래프트 제도가 있기 이전에는 강팀들이 유망한 대학/고등학교 졸업 선수들을 마구 자유계약으로 사들이는 모습이 있었지만,
결국 '사회주의적 제도'(...)라는 비판을 이겨내고 1965년부터 드래프트가 시작되었다.

MLB 드래프트의 꽃은 단연 1라운드, 그것도 전미가 집중하는 1~5순위 정도지만,
야구라는 종목의 '유망주가 마이너리그에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하위 라운드에서 심심찮게 괴수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특히 고교/대학교 시절에는 가진 툴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특유의 타격 재능을 발휘하는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큰 족적을 남기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하위 라운더 출신' 중 눈에 띄는 선수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데이브 파커(1970 드래프트 14라운드 전체 332순위)
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통산 2,712안타 / 339홈런 / 1,493타점
올스타 7회 , 월드시리즈 2회(1979/1989), 내셔널리그 MVP 1회(1978), 3회 연속 외야수 골드글러브(1977-1979)
실버슬러거 3회(1985,1986,1990), 타격왕 2회, 타점왕 1회

원래 미식축구 선수였으나 고교 시절 당한 무릎부상으로 야구에 전념한 데이브 파커는 공수를 겸비한 당대 최고 외야수였다.
특히 그는 강한 어깨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보살 72회'를 기록하는 후덜덜한 송구능력을 보여주었는데, 뛰었던 팀이 바로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뛰었던 팀인 피츠버그-그리고 같은 포지션이었다는 점에서 클레멘테의 후계자 소리도 들었다고.

그러나 피츠버그 이후 커리어에는 오점이 있는데, 1980년대 초 메이저리그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코카인 파동의 중심 인물이 되어 명예의전당 투표에도 광탈하는 등 말년이 좋지 못했다. (다만 피츠버그와 신시내티의 팀 명예의 전당에는 이름을 올렸다.)

특징은 파파이스 치킨 가게를 신시내티 시내에만 몇 개나 소유하고 있었다고.


2. 알버트 푸홀스(1999 드래프트 13라운드 전체 402순위)
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ㅇㅅㅈㅅㅅ

사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졸스신께서 드래프트 순위가 이렇게 밀린 것은,
푸홀스가 도미니카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대학교 1학년 푸홀스는 무려 유격수로 뛰면서 .461과 22홈런을 기록하는 미친 타격능력을 보여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팀들이 푸홀스에게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당시 막장운영의 정점을 달리던 어떤 동부 팀의 스카우터가 푸홀스를 데려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임한 사건은 유명하다. 만약은 없지만, 푸홀스를 데려왔다면 데블레이스의 암흑기가 조금 빨리 끝났을지도?

그 이후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3. 돈 매팅리(1979 드래프트 19라운드 전체 493순위)

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다저스 감독으로 더 익숙한 돈 매팅리.
통산타율 .307, 2,100안타, 1000타점을 넘긴 양키스의 전설 중 한 명.
그가 어쩌다가 19라운드라는 낮은 순위에 지명되었는가 하면,

인디애나주 레이츠 고등학교의 천재 타자였던 매팅리는 주 최고 스타였고(고교 4년간 94승 9패라는 미친 기록...), 자연히 인디애나 주립대에 야구 장학금을 제안받았다.
그의 부친은 그를 찾아오는 메이저리그 팀들에게,
"우리 애 대학 갈 거니까 눈독 들이지 마쇼."라고 선언했고,
많은 팀들은 그를 '대학 갈 친구 괜히 뽑아서 지명권이나 날리지 말자'는 마인드로 걸렀다.

그러나 19살 매팅리의 생각은 좀 달랐는지, 19라운드에서 양키스가 23,000달러 계약금을 제시하자 바로 사인해버리며(...)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4. 라인 샌버그(1978 드래프트 20라운드 전체 511순위)

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한때 마구마구 2루수 용병 최고존엄이었던 라인 샌버그.
굵직한 기록들로는 1984년 MVP, 통산 2루수 최다 실버슬러거(7회), 올스타 10회, 통산 285홈런 등
한 시대 최고의 2루수로 군림했다.
샌버그의 경우도 위의 매팅리와 비슷하게 대학교의 통수를 치고 프로에 입문한 케이스.
많은 스포츠맨들이 그렇듯, 그는 야구는 물론 풋볼에도 대단히 재능이 있었다고.
대학 풋볼 1부리그(NCAA 1 디비전)에 속한 워싱턴 주립대가 그에게 장학금을 제안했고 이에 서명했지만,
필리스 스카우터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그를 설득해 2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로 그를 데려갔다.

그러나 필리스 스카우터들의 노력에도 무색하게도, 윗선에서는 샌버그가 그렇게 좋은 선수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유격수를 보기에는 수비가 썩 좋지 않았고, 3루에는 필리스의 GOAT인 마이크 슈미트가 굳건했다.
결국 필리스는 래리 보와(주전 유격수)+샌버그로 컵스의 주전 유격수였던 이반 데헤수스를 데려오는데,
이는 컵스에게 전설이 될 재목을 그대로 갖다 바친 결과를 낳았다.


5. 제프 켄트(1989 드래프트 20라운드 전체 523순위)
image.png MLB 드래프트의 묘미, 하위 라운드의 반란
(랜디 존슨의 공에 맞은 역사적인 새를 잡고 쪼개고 있는 제프 켄트)

역대 2루수 홈런 1위. 통산 2,461안타를 기록한 전설(이지만 입을 함부로 놀려 명젼에는 못 들어가신)
UC 버클리에서 첫해 .349의 훌륭한 기록을 보였으나, 그의 타율은 이듬해 .193으로 급전직하했다.
사실 그는 대학시절 통산 홈런이 8개에 불과했는데, 이것 역시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는 팀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블루제이스도 로또 긁는 심정으로 그를 드래프트했고, 3년이라는 시간 후에야 메이저리그에 도달하게 된다.
첫해 .239를 기록한 그는 메츠의 데이비드 콘을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메츠에서 21홈런을 때려내며 파워를 보여준다.
이후 짐 토미, 알버트 벨, 매니 라미레즈가 버티던 클리블랜드로 이적해 슈퍼팀의 일원이 되었으나 실패.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레전드(이자 기아 외국인 JOAT가 되는) 맷 윌리엄스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이후 기량을 만개해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2루수가 된다.

다만 백인우월주의, 언론을 상대로 적대적인 모습, 쓸데없이 입을 터는 모습을 보여주며 명전행에는 실패.



재밌으면 2편도 쓰겠습니다. 다음엔 투수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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